
크리스퍼가 온다 — 유전자를 정확히 자르고 고치는 기술이 작물 개량을 어떻게 바꾸는가
생물의 유전 · 생명공학기술의 발달 · 농생명과학
책 소개
유전자가위 크리스퍼의 작동 원리를 처음 밝혀 노벨화학상을 받은 제니퍼 다우드나가 동료 새뮤얼 스턴버그와 함께 그 기술의 탄생 과정을 직접 쓴 책입니다. 저자는 세균이 바이러스를 막으려고 쓰던 방어 장치에서 출발해, 어떻게 그것이 원하는 유전자만 골라 자르고 고치는 도구가 되었는지를 1인칭으로 풀어냅니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이 기술이 사람뿐 아니라 작물과 가축까지 바꿀 수 있게 되면서 따라온 윤리 문제도 짚습니다. 농생명과학에서 병해충에 강한 작물이나 영양을 보강한 농산물을 만드는 일이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디서부터 신중해야 하는지를, '유전자를 직접 고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탐구하기 좋은 책입니다.
책은 크리스퍼가 본래 사람이 발명한 기술이 아니라 세균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방어 체계였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세균은 자신을 공격한 바이러스의 DNA 조각을 기억해 두었다가, 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하면 그 기억을 길잡이 삼아 침입자의 DNA를 잘라 버립니다.
저자는 이 길잡이 역할을 하는 RNA와 DNA를 자르는 단백질(Cas9)을 사람이 원하는 서열로 바꿔 주면, 생물의 유전 정보 가운데 정확히 한 곳만 골라 자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설명합니다. 책 후반부에서는 이 도구가 쥐와 원숭이부터 농작물과 사람의 세포까지 빠르게 쓰이게 된 과정을 소개하면서, 사람의 배아까지 고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멈춰야 하는지 묻습니다.
생물의 유전 단원에서는 사람이 생물의 유전 정보를 인위적으로 다루는 여러 기술을 생명공학기술로 묶어 다룹니다. 그 바탕에 있는 것이 유전자 재조합 기술인데, 한 생물에서 원하는 DNA 조각을 떼어 내 다른 DNA에 이어 붙이는 방법입니다.
이때 특정 DNA 서열을 알아보고 자르는 제한효소가 가위 역할을 하고, 잘린 DNA를 이어 붙이는 DNA 리가아제가 풀 역할을 하며, 그 유전자를 세포 안으로 실어 나르는 플라스미드 같은 운반체가 함께 쓰입니다. 이렇게 만든 유전자를 작물이나 미생물에 넣어 원하는 형질을 갖게 한 것이 유전자 변형 생물체입니다. 이런 기술은 질병 치료와 식량 생산에 기여하는 한편, 안전성과 생명윤리를 함께 따져야 한다는 점도 단원에서 다룹니다.
생명과학에서 배우는 제한효소는 정해진 짧은 서열만 알아보고 자르는데, 그렇다면 수많은 유전자 가운데 내가 원하는 단 한 곳만 정확히 겨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크리스퍼가 바로 이 문제를 푼 도구입니다.
제한효소는 인식하는 서열이 정해져 있어, 자르고 싶은 자리가 그 서열과 맞지 않으면 쓸 수 없습니다. 반면 크리스퍼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RNA의 서열을 사람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어서, 길잡이만 새로 설계하면 유전체의 거의 어느 지점이든 골라 자를 수 있습니다. 자르는 위치를 효소가 정하던 방식에서, 길잡이 RNA의 서열만 바꿔 위치를 마음대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 크리스퍼의 핵심입니다. 농작물 개량에 견주면 이렇게 이어집니다.
기존 유전자 변형 작물이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통째로 옮겨 넣는 방식이었다면, 크리스퍼는 작물이 본래 가진 유전자 가운데 병해충에 약하게 만드는 한 글자를 골라 고치는 일까지 할 수 있습니다. 외부 유전자를 새로 넣지 않고 자기 유전자만 바로잡는 길이 열리면서, 무엇이 유전자 변형이고 무엇이 정밀 육종인지를 가르는 기준 자체가 다시 논의되고 있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두 부품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자를 위치를 알려 주는 길잡이 RNA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DNA를 자르는 Cas9이라는 단백질입니다.
길잡이 RNA는 자르고 싶은 표적 DNA와 서로 짝을 이루는 서열을 가지고 있어서, Cas9을 데리고 가 그 짝이 맞는 자리에 정확히 붙습니다. Cas9은 그 자리에서 DNA의 두 가닥을 끊고, 이후 세포가 끊어진 부분을 다시 잇는 과정에서 작은 변화가 생기거나, 사람이 미리 넣어 둔 새 서열로 그 자리를 바꿔 넣을 수 있습니다. 제한효소가 자르는 서열이 효소마다 고정되어 있는 것과 달리, 크리스퍼는 길잡이 RNA의 서열만 새로 만들면 표적을 바꿀 수 있어 다루기가 훨씬 유연합니다.
다만 길잡이와 서열이 비슷한 엉뚱한 자리까지 잘리는 표적 이탈 문제가 있어, 정확도를 높이는 일이 농작물이든 의료든 안전하게 쓰기 위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농업에서는 이 기술로 병에 강하거나 영양이 보강된 작물을 만드는 연구가 이어지는데, 자기 유전자만 고치는 경우와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넣는 경우를 같은 규제로 다뤄야 하는지가 함께 논의되고 있습니다.